[일일시호일]-순간 순간이 때가 되고. 시절이 되고. 삶이 된다.

<일일시호일 한국 포스터>

키 키린

내 인생 최고의 배우, 내가 사랑하는 배우, 항상 지켜보던 배우... 는 아니었다.

 

도쿄타워에서 오다기리 죠와 호흡을 보며 호기심이 생겼고,

알게 모르게 묵묵하게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힘을 가진 배우라는 건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작년 가을 죽었다.

장국영이 만우절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럼 헛헛한 기분이 들었던 날이 또렷이 기억난다.

이제 좀 친해지려고, 알고 싶어서 다가가려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극장에 갔다.

 

 

日是好日

중학교 한문 1, 2가 불현듯 떠올랐다.

같은 글자를 두번 써서 복수, 강조 또는 반복의 의미를 지니게 되니 하루와 하루 가 합쳐져 매일 이라 될 것이며 是는 영어의 is 처럼 '~이다' 로 해석이 될 것이다. 好日은 좋은 날이라는 형용사+명사의 관계일 것이고.. (아니면 말고ㅋ)

 

영화에서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 노리코와 미치코가 족자를 보며 말한다.

 

"음... 그건 나도 알지. 그게 다야?"

"음..."

 

 

하루가 좋은 날이다?

모든게 처음이고 하나하나가 어색하며 서툴기만 한 다도 수업을 듣기 시작한 두 여대생.

그들은 어느 덧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고 자연스럽게 변화의 시간을 가진다. 동시대의 장삼이사가 가지는 화두와 고민을 그대로 떠앉기도 하고 후회도 하며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마음도 움직이고..

그럼에도 돌고 돌아오는 새해의 일출과 설날의 떡국과 여름의 땡볕과 겨울의 추위는

'어쩌면 이리도 똑같냐'며 지루하기도 하지만 반갑다.

 

 

이 자연스러움으로 몸 안에 흡수되었을 때 또다른 고민이 스믈스믈 떠오른다.

아직도 부족한 나, 메너리즘에 빠진 나, 발전을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

 

따뜻한 물이 가지는 뭉글뭉글한 소리와 차가운 물의 청아한 소리를 느끼며 노리코는 다시한번 생각한다.

이 순간, '때'를 충만하게 느껴보자..

<일일시호일 OST 표지>

 

저녁 문득 생각해 봤다.

 

밥을 꼭꼭 씹어 먹어 본 적이 언제 였던가?

요가나 필라테스를 할 때가 아니면 내 스스로 손 끝의 감촉, 귀 끝에 닿는 소리를 만끽한 게 언제 였었나..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해서 '오늘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고민해 본 적은.. 아련하다.

 

순간 순간이 모여 한 때가 되고. 시절이 되고. 삶이 된다..

 

 

+ 100분간 시간상으론 10년이 넘는 세월을 표현하며 쉼 없이 장면이 쪼개져서 이어진다.

하지만 그 분할과 흐름은 계절의 변화처럼, 차 한잔의 여유처럼 매우 조용하다.